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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산남의진역사(山南義陣歷史) 22

조충래 전원생활체험학교장 본보 논설주간

기사입력 2021-03-05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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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지나온 것이 얼음 위를 밟아온 것 같은데, 세월의 흐름은 긴 끈으로도 묶을 수 없구나. 도소주(屠蘇酒)1)는 시정(詩情)을 온화하게 하고, 요란한 폭죽소리가 새해의 일을 일으킨다.

 

문을 닫고 위엄을 양성하니 엎드린 범과 같고, 글을 읽고 고요함을 익히니 고승(高僧)과 같다. 올 봄에는 침입하는 악(惡)들을 쫓아내고 우리 궁궐에 외국 조공물이 들어오는 것을 기쁘게 보리라. -정미(丁未:1907)년 정월 초하루에<山南義陣遺史 p151> 정환직 선생의 시(詩)다.

 

 

정환직(鄭煥直) ⑥ <山南倡義誌 卷下 9~12p>

 

이때 흩어진 부대가 각지에 있어 태반이 돌아오지 못하고 형세가 위험한 지경이 되었다. 이에 여러 요인들과 의논하여 9월3일부터 12일 사이에 본진을 보현산 주위 인근지대로 옮겨 흩어진 군인들이 돌아올 장소를 정하였다.

 

여러 장령급 종사(從事)로 하여금 각지로 나가 한편으로는 군수품을 모집하고 한편으로 정세를 탐정하며, 또 한편으로는 비밀리에 서로 연락하기를 9월 12일 밤에 본진을 북동대산으로 옮기고 청하, 영덕, 청송 등의 고을로 전령을 보내어 군량을 산 위로 운반하였으며, 우재룡, 김성일, 김치훈 등으로 하여금 날마다 병사를 훈련시켰다.

 

여러 사람이 각지로부터 돌아왔다. 김일언, 박문선은 청송으로 가서 서종락과 연락하여 돌아오고, 홍우섭 등은 동부산(東釜山)에서 화약을 사서 돌아오고, 정춘일은 하양에서 군인을 모집해서 돌아오고, 손선일, 손량윤, 손양상 등은 대구에서 경성의 소식을 탐문해서 돌아오고,

 

장성우, 손기찬은 인동(仁同)2)에서 군인을 모집해서 돌아오고, 최기보, 최치환 등은 죽장에서 무기를 모아서 돌아오고, 박 광, 김태환 등은 포항으로부터 정세를 탐문해서 돌아오고, 김성극, 김진영 등은 의성에서 군인을 모집해서 돌아오고, 이종곤 등은 기계에서 돌아오고,

 

이규환 등은 진보에서 돌아오고, 정래의는 북안에 가서 이형표와 만나 돌아오고, 이규필 등은 안동에서 군인을 모아서 돌아오고, 구한서는 영덕에서 군인을 모집해서 돌아오고, 이상호는 경주에서 군인을 모집해서 돌아오고,

 

최익문, 정완성 등은 영천에서 군인을 모집해서 돌아오고, 이세기는 경주로부터 장기를 거쳐 군인을 모집해서 돌아오고, 최세한의 정탐기록이 도착하고, 이규상이 연해지방의 소식을 정탐해서 돌아왔다.

 

새로 편성한 부서는 다음과 같다. 참모장(參謀將) 정순기, 중군장(中軍將) 이세기, 도총장(都總將) 구한서, 선봉장(先鋒將) 우재룡, 후봉장(後鋒將) 박 광, 좌영장(左營將) 이규필, 우영장(右營將) 김치옥, 연습장(練習將) 김성일, 소모장(召募將) 김태환, 도포장(都炮將) 고 찬, 좌익장(左翼將) 정래의, 우익장(右翼將) 백남신, 좌포장(左炮將) 김성극, 우포장(右炮將) 이규환, 장영집사(將營執事) 이규상, 군문집사(軍門執事) 장성우

 

입암에서의 패전 후에 홍구섭이 안동 등지로 돌아가 적으로부터 차단되어 돌아오지 못하는지라 우재룡을 보내어 도와서 본진으로 돌아오게 했다. 김 학 등을 파견하여 먼저 포항 등지에 잠복하게 하고 이세기, 박기동 등을 보내어 김 학 등과 함께 9월 22일에 병사를 이끌고 옛길을 따라 궤령을 넘어 불의에 흥해를 습격하니 성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주둔해 있던 적을 모두 죽이고 성중에 비치해 두었던 병장기를 수습한 뒤 읍민들을 무마하니 벼슬아치와 읍민이 모두 기뻐하여 소를 잡고 술을 빚어 노고를 치하하더라. 9월 28일에 신녕으로 진군하여 함락하니 적이 무너지고 흩어져 남쪽으로 도주하였으며, 그때 적이 고을의 엽총 400여 자루를 거두어 읍의 창고에 넣어둔 것을 모두 수거해왔다.

 

9월 29일에 이어서 의흥을 함락할 새, 서문 밖에서 적의 복병을 만나 전초부대가 놀라 물러났다. 급히 군사를 나누어 성을 포위하니 적이 북쪽으로 도주하거늘 추격하여 많은 적을 죽였다. 성으로 들어가 엽총 150여 자루와 약간의 탄환을 거두어 그날 밤에 회군하였다.

 

10월 2일에 기후의 괴변이 있어 심한 바람과 운무가 크게 일어나더니 다음 날 3일에도 연이어 비바람과 천둥이 요란하였다. 청송 두방에서 체류하며 도로가 진창이 되어 발이 묶인데다가 사방의 통신이 두절되었다.

 

이 때 군대의 화약이 핍절된데다 조선식 화승총은 화승(火繩)이 습기에 젖어 사용의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적 1대대가 때를 타고 졸지에 들이닥치니 전군이 패주하기에 이르렀고, 김성극 등 여러 장령이 대장을 호위하여 고봉(高峰)을 넘어 포위를 벗어났다.

 

10월 5일에 전군이 보현산 두마(斗麻)에 모였다. 여러 사람들과 의논하여 말하기를 “지금 군중(軍中)에 탄약 등이 핍절되고 적의 대부대가 추격해오니 적이 흘러들어오게 하여 적세를 흩어지게 하는 것도 역시 하나의 계책일 것이다.” 하고 정순기 이하 여러 장령들에게 각기 소부대를 이끌고 청송, 진보 각 주요지점으로 들어가서 한편으로는 적을 유인하고 한편으로는 탄약 등 무기를 구해서 보내도록 한 후에, 친히 본진을 이끌고 기계에 이르니 우익장 백남신이 수백 명을 모집하여 먼저 돌아와 있었다.

 

백남신을 앞세워 안내하게 하고 연해(沿海) 등지로 향하였다.

 

(계속)

 

 

각주)

1) 도소주(屠蘇酒) - 설날에 마시는 세주(歲酒)의 한 가지이다. 육계, 산초, 흰삽주뿌리, 도라지, 방풍 등 여러 가지 약재를 넣어서 만든다. 사기(邪氣)를 물리쳐서 병이 생기지 않고 장수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하여 새해 첫 날에 이 술을 마셨다.

 

2)  인동(仁同) - 경상북도 구미시 낙동강 건너 강동의 일부 지역을 지칭하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인의동, 진평동, 구평동 등이 존재하며 정확히는 1978년 구미시에 편입된 칠곡군 인동면 지역을 뜻하지만, 넓게 본다면 구미 강동 전체를 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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