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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산남의진역사(山南義陣歷史) 31

조충래 전원생활체험학교장 본보 논설주간

기사입력 2021-05-24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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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남의진기념사업회는 2013년 거동사가 산남의진 제4차 결집지의 역할을 한 이유로 국가현충시설로 지정된 후, 당시 혜신 주지스님의 원력으로 산남의진기념사업회를 재결성하고 산남의진 순국선열 추모와 선양사업을 해마다 거르지 않고 꾸준히 해오고 있다.

 

거동사에서 시작했던 추모제를 거의(擧義) 장소였던 충효재로 옮기고 충효재와 정환직·용기 부자 대장의 묘소 주위를 성역화하고자 하는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

 

올해 제9회의 추모식과 4회차의 백일장·사생대회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 전반의 여건으로 다시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다. 적은 인원으로도 추모식을 추진하려 하였으나 갑자기 영천에 발생한 코로나 양성판정 환자로 인해 행사진행이 어렵게 되었다.

 

부득이 추모식은 가을로 연기하고 백일장은 공모전으로 작품을 받아 진행하려 한다. 백일장 공모전이 많은 분들의 산남의진과 의병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한구(李韓久) ① <山南倡義誌 卷下 27~28p>

자는 한유(漢有)요 호는 신성재(新省齋)로 부른다. 처음 이름은 경구(暻久)요 자는 경일(景日), 호는 지포(芝圃)다. 본관은 여주(驪州)로 향원진사(鄕員進士) 세정(世貞)의 후손이요, 문원공(文元公) 회재(晦齋) 이언적의 12세손이다.

 

태어날 때부터 특이한 기질이 있어 영리하고 슬기로움이 보통사람을 뛰어넘었으며, 검소하고 결백하며 맑고 아름다웠다[廉潔淸雅]. 약관의 나이에 연이어 양친(兩親)의 상(喪)을 당하였는데, 가례(家禮)를 준수함이 나이든 선비와 같이 하였고, 계모 손씨를 섬기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또한 천륜(天倫)의 정이 돈독하여 동생들을 기르고 가르침에 있어 부모와 다름없이 하니 마을의 이웃들이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살림살이가 없어도 오히려 편안하고 침착하며[晏然], 지평(芝坪)1)에 우거(寓居)2)하여 날마다 옛 사람의 경서(經書)와 사기(史記)를 읽으며 스스로 즐거워하고 춘추(春秋)와 역학(易學)에 밝고 천시(天時)와 명리(命理)에 널리 통달하였다.

 

항시 단오(丹吾) 정용기를 만나 따름에 양세교의(兩世交誼)3)로 막역지우(莫逆之友)가 되니 당시 사람들이 관포지교(管鮑之交)4)에 비하였다.

 

당시의 일을 말하자면, 종묘사직이 매우 위태로운 지경이더니 을사늑약(乙巳勒約)을 당함에 이르러 동엄 정환직 공이 황제의 밀지를 받아 아들을 영남에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 통탄하여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사천년 예의지국(禮儀之國)으로 하루아침에 섬나라 오랑캐에게 늑약을 당하였구나. 이미 생삼사일(生三事一)5)의 의(義)가 있는데 어찌 보고만 있을 것인가.” 하고 이로부터 밤낮으로 동지를 구하였다.

 

병오(丙午:1906)년 봄에 영천 북안에 가서 이형표를 만나 작금에 일어난 사실을 말하니 형표가 지당한 말씀이라 하고 뒤돌아보지 않을 것을 맹서하였다. 또 흥해 곡강에 가서 최세한을 만나니 세한 역시 뜻있는 사람이라, 다소의 설명과 대화로 만 번을 죽어도 저버리지 않으리라 하였다.

 

이로부터의 창의실록은 정용기 대장 실록에 실려 있으니 다시 기록하지 않는다.

 

정용기 대장이 홀로 경주진위대에 가고자 함에 동행하고자 하니 정대장이 제지하며 말하기를 “지금 가는 길이 뜻과 같지 않을 때에 대책과 방법을 세워 수습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 이름에 배행(陪行)이 무익(無益)함을 깨달았다.

 

진영을 통솔하여 북쪽 영해 방향으로 행군하여 신태호군과 합하고자 주방산(周房山)6)에 이르렀는데 정순기가 서신을 보내왔다.

 

정대장이 대구로 호송되어 간다는 소식이라 이경구, 서종락 등과 함께 울면서 맹서하기를 “정대장이 돌아오지 못한다면 의거를 온전하게 진행하기 불가능하다.” 하고 즉시 정래의를 신태호에게 보내 경주를 습격하자고 약속하였다.

 

다시 진영을 구성하기를 소모장(召募將)에 정래의, 선봉장(先鋒將) 서종락, 좌익장(左翼將) 홍구섭, 우익장(右翼將) 남석인, 후봉장(後鋒將) 이경구, 도포장(都炮將) 백남신, 우포장(右炮將) 최기보, 좌포장(左炮將) 박경화, 군문집사(軍門執事) 조경옥, 장영집사(將營執事)에 이두규를 임명했다.

 

영덕 주산(主山)에 이르니 김원서가 와서 종군(從軍)하였다. 처음에 김현기 부대에 종군하였는데 현기가 패하자 다시 신태호군에 종군하였으나 뜻이 맞지 않아 산남의진에 입진하였다. 나이는 비록 많으나 노익장(老益壯)의 기운이 있어 그날로 도총장(都摠將)으로 삼았다.

 

(계속)

 

 

각주)

1) 지평(지평) - 현, 경북 포항시 죽장면 지동리 지평마을

2) 우거(寓居) - 남의 집이나 타향에 임시로 거처하여 삶

 

3) 양세교의(兩世交誼) - 정용기 대장이 죽장 창리에 옮겨 살 때 아버지가 서울로부터 내왕하면서 여강 이씨 능경, 능종 형제와 함께 좋은 벗이 되었다. 정용기 대장이 한구를 비롯한 여러 종형제들과 함께 어울리니 양세(兩世)가 교분을 나눔은 친척과 같았고, 특히 한구와는 사생(死生)의 의를 맺었다.(산남의진역사24)

 

4) 관포지교(管鮑之交) -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이 매우 사이좋게 교제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서, 매우 다정하고 허물없는 교제를 이르는 말

5) 관포지교(管鮑之交) -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이 매우 사이좋게 교제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서, 매우 다정하고 허물없는 교제를 이르는 말

6) 주방산(周房山) - 청송 주왕산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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