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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8-1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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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한여름 밤의 꿈

최병식 편집국장

기사입력 2026-08-1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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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의 끝자락이라지만 기세가 꺾일 줄 모르는 폭염이 연일 기승입니다. 한 줄기 시원한 소낙비 끝의 발그레한 무지개는 반갑지만, 길고 긴 더위에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이처럼 낮의 이성과 질서가 더위에 흐물흐물하는 계절이면 문득 떠오르는 두 편의 ‘꿈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서양의 셰익스피어가 쓴 《한여름 밤의 꿈》이요, 다른 하나는 동양의 서포 김만중이 써 내린 《구운몽》입니다.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한여름 밤의 숲은 그야말로 욕망과 환상이 뒤엉킨 뜨거운 아수라장입니다. 율법과 군주의 눈을 피해 숲으로 도망친 연인들은 장난꾸러기 요정 퍽이 눈꺼풀에 잘못 바른 꽃즙 탓에 사랑하는 상대를 어이없게 바꿔치기하고, 심지어 요정 여왕은 당나귀 머리를 쓴 한심한 장인과 열정적인 사랑에 빠집니다. 낮의 세계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이 기묘하고 궤도를 이탈한 혼란 속에서 셰익스피어는 테세우스 군주의 입을 빌려 선언합니다. 이 세상엔 정상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환상을 보고 없는 세계에 형태를 부여하는 ‘광인과 연인, 그리고 시인’이 존재하며, 그것이야말로 억눌린 생명력과 창조의 근원이라고 말입니다.
반면, 김만중이 풀어낸 몽유의 무대는 한여름 밤의 광기 어린 숲이 아니라,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의 형산입니다. 불제자 성진은 연화봉의 봄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팔선녀와 유희를 나누며 미색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 죗값으로 인간 세상에 ‘양소유’라는 인물로 태어나 평생  벼슬은 승상에 이르고 여덟 명의 부귀영화 같은 아내를 얻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부와 영예를 극치까지 누립니다. 그러나 생의 절정에서 느낀 것은 깊은 허무입니다. 아침 안개처럼 스러지는 것은 권력과 미색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육관대사의 장경이 울리고 난 뒤 깨어난 성진의 손에 쥐여 있던 것은 화려한 보석이 아니라 단지 108 염주 한 알뿐이었죠.
셰익스피어의 유럽 연인들도, 김만중의 성진도 거대한 유희를 온몸으로 느낀 뒤에야 ‘깨달음’이라는 현실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두 작품이 우리에게 던지는 궁극의 메시지는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목메는 현실이란, 결국 한 편의 잘 짜여진 연극이자 ‘일장춘몽’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연극의 막을 내리며 요정 퍽을 통해 “만약 저희가 여러분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모든 것이 한 줄기 꿈에 불과했다고 생각해 달라”며 관객을 달랩니다. 김만중 역시 양소유가 꿈에서 깨어나 성진으로 돌아오는 순간, ‘꿈이 삶인가, 삶이 꿈인가’ 하는 인생의 본질이 환영임을 일깨웁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백팔번뇌와 악전고투 속에 통장 잔고의 숫자에 슬퍼하고, 사소한 오해로 이웃과 다투며, 오르지 않는 주식과 권력의 향배에 피를 말립니다. 낮의 세계가 강요하는 촘촘한 율법과 이성의 테두리 안에서 지쳐가는 우리네 모습은, 요정의 약초에 눈이 멀어 엉뚱한 상대를 사랑한다고 우기던 숲속의 가엾은 연인들이나 부귀영화에 취해 나이가 드는 줄도 몰랐던 양소유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지만 이 엄숙하고 팍팍한 우리의 인생에 ‘꿈’이라는 유희조차 없었다면 삶이 얼마나 메마를까요. 광인과 연인과 시인이 궤도를 이탈하여 만들어내는 일탈이나 엉뚱함이 있기에 세상은 비로소 다채로워지며, 부귀영화도 결국 한 조각 꿈이라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타인의 허물을 너그럽게 품을 수 있게 되나 봅니다.
혹독한 더위가 연일 이어지는 한여름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불을 차는 이들에게 감히 권해 봅니다. 지금 그대를 괴롭히는 그 뜨거운 번민과 욕망들도 한 줄기 소낙비 뒤에 사라지는 무지개나, 아침이 오면 허무하게 깨어날 한여름 밤의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이 어차피 한바탕 꿈이라면, 이 뜨거운 여름날을 조금은 더 유쾌하고, 조금은 더 뻔뻔하게 ‘광인이자 연인이자 시인’이 되어 즐겨보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닌 듯 합니다.

cdi (cdinew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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