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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8-2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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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고깔을 쓴다

한 관 식 작가

기사입력 2026-08-2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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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똥구리(33)
합하 추명의 눈에는 한없는 여관(女官) 주용의 지략만 한 가득이었다. 어찌 저토록 올곧고, 영악하고, 사리가 분명한 여관이 내게 배당되었을까. 모든 것을 하늘의 뜻으로 돌렸다. 춘명이 자리보존을 하며 남은 세월을 사경에 헤매는 것과 하명이 일찍이 기방출입에 매진한 것과 모두 연관성이 있다고 사려(思慮)되었다. 그러면서 빼어난 외모는 아니지만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은, 내내 한 고리로 묶어두는데 충분하였다. 주용의 부친은 한의원을 운영했다.
침술과 남녀의 합환(合歡)에 능하여 입소문을 타고 한때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지만 윗대 합하의 대통을 잇지 못하는 잘못에 휘말려 하루아침에 능지처참을 당하게 되었다. 그때 목숨을 간신히 보존한 여식이 주용이었다. 대통이 끊긴 합하의 자리에는 먼 친척이었지만 곁가지가 단출한, 고만고만한 열다섯 살 아이가 생뚱맞게 낙점되어 궁궐로 들어오게 되었다. 궁궐이라는 것이 대단한 게 아닌 것 같아도 억지로 박음질하면 그런대로 모양을 갖춰 근엄해지고, 처음부터 그 사람의 자리인양 쉽게 표시가 드러나지 않은 강점이 있었다. 
그 강점의 주변에는 한사람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직력과 맹목적인 굴종의 자세가 숨겨져 있었다. 궁궐에서 암암리에 돌아가는 비밀을 누설 시 능지처참과 삼대에 걸친 무서운 피비린내가 항시 똬리를 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누구도 쉽게 발설하지 못했고,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도 등을 돌리게 되면 무심코 던진 한마디까지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위험이 팽배해있었다. 그래서 궁궐사람들은 친하지만 속내를 들키지 않는 쪽에 섰고, 친하지 않다면 말을 섞지 않았다. 분명한 규율과 서열이 있어서 가급적 몰려다니지 않는 것이 그들만의 세계였다. 
주용은 한 가지 약조를 받아내기 위해 일찌감치 추명의 처소에 숨어들었다. 아직 정식혼례를 치르지 않은 침전은 용마루가 없었다. 병풍 뒤에서 내시들이 물러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추명이 놀라지 않게 작은 소리로 자신의 기척을 알렸다. 
“합하 나리 소녀 주용이 옵니다.”
추명은 상체를 일으켰다. 
“이 시각에 네가 있을 곳은 이곳이 아니지 않는가?”
“압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발길이 닿는 이 마음을 어쩌지 못해 이른 시각에 숨어들었습니다.”
“아무리 내가 너를 곁에 두고 싶다고 해도 이런 방문은 원치 않았음이야.”
“만일 여기에서 합하의 부름을 받지 못하면 혀를 물고 자결할 독한 마음뿐입니다. 이제 곧 국모의 간택이 있을 줄 압니다. 그렇게 되면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미천한 궁녀로 남겠지요. 사모하는 합하 나리의 손길한번이면 족합니다. 다시는 합하의 품속으로 파고드는 일없이 오직 시중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오늘만 하염없는 이 소녀의 간청을 들어주십시오. 그러니 앞뒤를 생략하고 합하의 품속으로 파고드는 소녀를 마음껏 품어주십시오.”
추명도 사실 주용이 싫지 않았다. 가까이 할수록 빠져드는 알 수 없는 향기에 사타구니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녹각과 영지버섯을 갈아 빻은 대롱을 목에 걸고 다니는 주용이 궁금하다고 생각한지는 오래전이었지만, 체통을 지키느라 나름대로 선을 넘지 않았다. 그런 두 사람의 합환은 거침이 없었고, 한 곳을 향한 맹렬함이 돋보였다. 주용은 밖으로 새어나갈 신음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추명에게 날갯죽지에 새 날개를 선물했다. 추명은 그 밤 내내 날아올랐다. -계속

cdi (cdinew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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