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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9-1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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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산남의진열전(山南義陣列傳) 246

조충래 전원생활체험학교장 본보 논설주간

기사입력 2026-09-1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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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布施)는 무소유(無所有)의 정신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무소유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가능합니다. 집착에서 벗어난 상태가 열반이니 무소유를 통해 번뇌 사라진 열반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보시는 이 걸림없는 자유로운 상태의 열반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라는 거지요. 어떻게 보시하면 될까요? 삼륜청정(三輪淸淨), 또는 삼륜공적(三輪空寂)을 이야기합니다. 삼륜은 시자(施者-베푸는 이), 수자(受者-받는 이), 시물(施物-보시물)의 세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보시하는 사람의 마음에  베푸는 주체가 없어야 합니다.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주는 겁니다. 내 것을 주는 것이 압니다. 지금 가진 것은 원래 내 것이 아니고 잠시 맡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재화가 그렇지요. 그런데 누군가에게 무상으로 받은 물건이라도 일단 내 수중에 들어오면 ‘내 것’이라는 집착이 생기는데, 하물며 노동을 해서 돈을 벌거나 댓가를 받게 되면 훨씬 강한 소유 의식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붓다께서 출가 수행자들에게 경제활동을 하지 말고 걸식하라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철저한 무소유를 통해서만 자유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까닭에 출가자는 기본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의복과 좌구(坐具), 밥그릇, 최소한의 의약품만을 소지하라는 사의법(四依法)을 율법으로 정하신 거죠. 그럼에도 스스로 자기관리를 하지 않는 이상 인간의 욕망은 끝없이 소유욕을 부추깁니다. 붓다 당시 출가자조차 네 가지를 지키는 대신, 좀 더 고급스러운 발우나 넓고 안온한 좌구를 가지려 하여 그를 경책한 내용이 경에 있습니다. 이렇게 가장 기본이 되는 욕망의 절제가 쉽지 않은 까닭에 물질이 풍요로운 이 세상에서는 소위 도인(道人)이 나기 어려운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둘째는 보시의 대상입니다. 받는 자에 대한 애착이나 관념이 없이 베풀어져야 합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주는 선물은 보시가 아닙니다. 올바른 보시 행위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받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수하고 맑은 마음으로 베푸는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댓가를 갚으려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보시의 행위에서 벗어납니다. 셋째는 보시하는 물건입니다. 시물(施物)의 청정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일반상식의 선에서 이해하면 되겠지요. 금강경에서는 이러한 세 가지가 청정하고 공적(空寂)한 무주상(無住相) 보시, 상에 머물지 않고 행하는 보시의 공덕은 동서남북 사방의 허공처럼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한량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보시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일으키는 경지로 나아가는 수행의 문이며, 또 그 경지에 도달하는 수행의 방편이기도 합니다. 또 재물이 있어야만 보시바라밀을 닦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경전에서는 물질이 아니어도 보시할 수 있는 일곱 가지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①안시(眼施)-자비롭고 따뜻한 눈빛으로 대하는 것 ②화안시(和顔施)-온화하고 밝은 미소로 대하는 것 ③언시(言施)-부드럽고 따뜻한 말로 위로와 격려를 나누는 행위 ④신시(身施)-몸으로 남을 돕거나 봉사하는 것 ⑤심시(心施)-진실하고 따뜻한 마음을 일으키는 행위 ⑥좌시(座施)-자리를 양보하거나 편히 쉴 수 있게 하는 배려 ⑦방사시(房舍施)-쉴 곳을 제공하거나 편안한 공간을 나누는 것들이 모두 보시의 수행입니다. 

이순구
자는 성희이고 지포 이한구의 동생이다. 성품이 온순하고 두터우며 사실을 기록하는 재주가 남달랐다. 당시의 실제적인 사실을 하나하나 가려 모아서 보존하고 갈무리하기를 대진일기(大陣日記)1)와 더불어 비교해 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각 지역을 정탐하는 일로 밖으로 나가는 바람에 입암의 변고를 다함께 겪지 못하였다. 또 영덕 패배 이후 몰래 청송으로 들어가서 서종락을 위하여 계책을 세웠지만, 서종락이 역시 패하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광복회원인 우재룡, 권영만 등과 연통하여 계책을 세우다 광복회원들이 붙잡히자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만주로 건너가서 해외 동지들과 더불어 서로 어울렸다. 형의 아들 두 사람이 모두 원통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조카, 손자들을 키우고 돌보면서 끝내 늙었다.
〈원문〉 
李純久는 字聖熙요 芝圃公之弟也라 性溫厚하고 有記事之敏하야 當時實事을 一一抄集而保藏者與大陣日記로  別無所差러라 各地偵探事로 出外하야 立巖之變에 不得冬難하고 又盈德之敗後에 暗歸靑松하야 爲徐鍾洛劃策이라가 鍾洛이 又敗에 復歸鄕里하야 通光復會員禹在龍權寧萬引策이라가 光復會被執에 率妻子渡滿洲하야 與海外同志로 相從이런이 聞兄子二人이 皆爲寃逝하고 復還朝鮮하야 撫恤從孫而終老하다
 <山南倡義誌 卷下75p>

李純久 義士 略歷(이순구의사 약력)
李純久(이순구)는 字(자)는 聖熙(성희)요 號(호)는 環菴(환암)이요 芝圃公(지포공)의 親弟(친제)라 性稟(성품)이 溫厚(온후)하다 史書(사서)에 精通(정통)하고 探偵(탐정)에 能熟(능숙)하였다 처음에 각지로 암행하여 정탐으로 활약하다가 山南陣(산남진) 각 분대가 각지로 분열되매 靑松(청송) 徐鍾洛(서종락)을 따라서 진후에 활동을 전개하여 각지로 연락하다가 각지 분진이 모두 전말되고 地下運動(지하운동)으로 轉流(전류)되어 滿洲(만주)로 건너가서 光復運動(광복운동)을 하더니 왜적들이 또 만주를 점령하여 만주가 왜적의 활동 영역 안으로 들어가고 公(공)은 본국에서 兄子(형자) 三人(삼인)이 寃逝(원서)되고 후사가 맹랑하게 되는지라 하는 수 없어 다시 고국에 돌아와서 臥薪嘗膽(와신상담)을 하면서 光復同志(광복동지)를 도우더니 乙酉(을유) 解放(해방)을 보고 山南義陣(산남의진) 追慕事業(추모사업)에 항상 優遇(우우)를 받고 建國功勞表賞(건국공로표상)을 받다 
<山南義陣遺史534p>

cdi (cdinew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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